본문 바로가기

말글터/마음의 소리

희망제작소 창립선언문

희망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암울했던 시절에도 어머니의 대가없는 희생과 기다림처럼,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절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분단과 독재, 가난과 분열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과 열정, 헌신과 실천으로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고 키워왔습니다.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민주화, 유례없는 고도 경제성장이 바로 그 희망의 성과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우리 사회는 마치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과 큰 수술을 거친 뒤의 후유증처럼 다시 절박한 과제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도 압축성장이 빚어낸 양극화의 그늘은 깊고도 넓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균형감 잃은 사회발전은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까지 위협합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는 그동안 이룩한 민주주의의 진전이 무색할 만큼 정체되고, 불필요한 분열과 갈등, 미성숙한 시민의식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 정쟁과 부패로 인해 신뢰의 위기와 지역갈등, 비전 부재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도처의 배타성과 이기주의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굵은 매듭과 병목이 되어 우리 모두를 옥죄고 있습니다.

갈 길은 멀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시작됩니다. 희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위로부터의 구호가 아니라 삶에 뿌리내린, 작지만 지혜로운 생각과 소망이 바로 희망의 원천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도처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만들고 키우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자 좋은 정책의 밑거름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를 통찰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박제된 이론과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으로 깊게 닻을 내리겠습니다. 그리하여 공공정신이 살아있는 정의로운 사회, 창의로운 문화와 예술, 생태주의 관점들이 구현되는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해 좋은 지혜를 모아내고 공유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성장지상주의, 맹목적 애국주의가 빚어내는 절망과 갈등, 분노를 희망의 씨앗으로 바꾸어내겠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희망을 피우기 위하여 애써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희망의 씨앗들을 촘촘한 그물코로 엮어내겠습니다. 18세기 명분과 관념에 사로잡힌 양반사회의 틈새에서 ‘실학’이라는 희망의 싹이 돋아났듯이 오늘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갈 ‘21세기 실학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희망은 결코 늦은 법이 없습니다. 이제 다시 희망을 노래합시다.

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