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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터/마음의 소리

거룩한 공간과 세계의 성화 - 멀치아 엘리아데

세계는 그것이 스스로를 거룩한 세계로 계시하는 한에서 세계로, 코스모스로 인식될 수 있다.


 모든 세계는 신들의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거나, 아니면 천지창조의 모범적 행위를 제의적으로 재현하는 인간들에 의해 성화되고, 따라서 코스모스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종교적 인간은 거룩한 세계 속에서만 존재에 참여하고 진정한 실존을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같은 세계에서만 살 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종교적 필요성은 누를 수 없는 존재론적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적 인간은 존재를 갈망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카오스에 대한 그의 공포는 곧 무(無)에 대한 공포와 같다. 그의 세계 위로 뻗쳐 있는 미지의 공간 - 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스모스화되지도 않은 공간, 어떠한 방향설정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어떤 구조도 만들어지지 않은 단순한 무정형의 넓이의 세속적인 공간 - 은 종교적 인간에게 있어 절대적인 비존재를 나타낸다.


만약 어떤 사악한 계기로 하여 그가 거기에 빠져 들어간다면 그는 카오스 속에서 용해된 것처럼 자신의 존재론적 실체가 텅 비었다고 느낄 것이며, 종당에는 죽고 말 것이다.


이 존재론적 갈망은 많은 방법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거룩한 공간의 영역 가운데 나타나는 그것의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실재의 바로 핵심에, 세계의 중심에 - 즉 정확히 코스모스가 출현하고 네 개의 지평을 향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한 곳에, 신들과의 교섭이 가능성을 얻는 곳에, 간단히 말하면 정확히 그가 신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곳에 발을 디디고 서려는 종교적 인간의 의지이다.


우리는 중심의 상징이 비단 국가, 도시, 사원, 궁전의 건축원리일 뿐 아니라 떠돌이 사냥꾼의 천막, 목자들의 유르트, 정착 농경민의 집 등등을 막론하고 가장 비천한 인간의 주거지에도 역시 건축원리로 작용하는 것임을 보았다. 이는 곧 모든 종교적 인간은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며, 동시에 절대적 실재의 원천 바로 거기에, 신들과의 교섭을 그에게 보장하는 출구로부터 가능한 한 가까운 곳에 위치시킨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장소에 정주한다는 것, 어떤 공간에 거주한다는 것이 우주 창조의 반복, 그리고 따라서 신들의 작업의 모방에 해당하느니만큼, 종교적 인간에게 있어서 공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모든 실존적 결단은 사실상 하나의 종교적 결단을 구성하게 된다.


자기가 거주하기로 선택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그는 단지 카오스를 코스모스화할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기의 작은 코스모스를 신들의 세계와 비슷하게 만듦으로써 그것을 성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의 심원한 향수는 '신적인 세계'에서 거주 하려는 것이오요, 자기의 집이 사원이나 성전에서 표현된 바 신들의 집과 닮게하려는 욕망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종교적 향수는 태초에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났을 때 그대로 순수하고 거룩한 코스모스에서 살려는 욕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에게 있어서 거룩한 시간의 경험은 태초(in principio), 즉 창조의 신화적 순간 그대로의 코스모스를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 멀치아 엘리아데, <聖과 俗 - 종교의 본질>, 거룩한 공간과 세계의 성화